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2021. 2. 3. 14:09심리

마음이 거부하는 역부족을 몸은 인정한다.

 

마음과 몸은 하나이다. 마음이 애써 외면하려는 진실을 몸은 다양한 증상으로 말해준다. 마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이내 몸은 어딘가를 고장 내서 마음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지킬 수 없는 계명

 

인간에게는 도덕적 가치가 있다. 그 도덕 속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 속의 말도 포함된다.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도 부모를 사랑하려고 애쓴다. 부모로부터 받을 사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괴롭다. 그래서 자신에게 사랑을 강요하고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랑을 받을 수 없는 탓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그래서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베이컨, 자화상, 1969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일은 없다.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어린아이, 아이어른은 살아가면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동안 어른들은 자신의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기만이라는 병에 걸리지도 않고, 잘 살아간다.

 

꼭 받아야만 하는 선물

 

아이는 부모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 사랑이라는 선물을 받은 몸에는 좋은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이런 선물을 받지 못하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최초의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 갈망이 과거의 그 아이를 평생 떠나지 않는다. 그 결과 그 아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성장하여 의미 없는 관계에 집착하기도 하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이상한 도돌이표

 

사랑을 받은 아이가 부모에게 더 많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학대받은 아이일수록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더 강하게 매달린다. 예전에 중요했던 시기에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그들에게 기대한다. 몸은 자신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 결핍을 잊지 못한다. 효도라는 미명하에 끊임없이 바치고 텅 빈 것을 채우려 갈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채워질 리 없다.

 

 

에곤 쉴레, 자기성찰자, 1911

 

 

학대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

 

학대를 받은 사람은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욕을 먹고, 매를 맞고, 굴욕을 당하고, 모욕을 겪기도 했지만 끔찍한 고통을 겪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학대는 금기이고, 학대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피해자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신의 고통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양육자의 학대는 실수가 아니다. 자신의 삶이 잘 안 풀린다고 욕설을 퍼붓고 피가 나도록 때리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어른들의 얼토당토않은 설명이 통하는 이유는 우리의 도덕이 옛날부터 어른의 편에 서서 아이를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어린이의 고통을 인지하기 불가능하다.

 

고통은 광기가 된다.

 

그 어린이는 영문도 모른 채 사회의 도움 없이 오직 견디고 살아낸다. 때로 그 고통은 증오로 변한다. 죄가 없던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 미치광이의 광기를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어른이 주는 상처와 고통은 아이를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다행스럽게 괴물이 되지 않더라도 그 아이는 스스로를 모욕하고 미워하는 일로 평생을 낭비하게 된다.

 

 

알베르트 블로흐, 초록 도미노, 1913

 

 

희생자라는 이름의 노예

 

가정에서 희생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희생자 외의 가족은 희생자를 통한 액땜을 통해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아간다. 희생자 중 착한 사람은 노여움과 분노의 감정을 자기 자신에게 표출하여 병에 걸린다. 마음이 해결하지 못한 일을 몸이 대신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부모에 맞설 수 없고, 탈출할 수도 없다. 오히려 두둔하기까지 한다. 희생자의 역할을 하는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부정의 교육

 

자가치료를 돕는 안내서에조차 피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주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사회에서 학대는 일종의 금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희생자의 역할에서 물러나고 자신의 삶에 대해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충실함으로써 과거로부터 해방되고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고 충고한다. 부정의 교육과 전통적인 도덕의 모순이다. 세상은 고통받던 아이를 혼동과 과중한 도덕적 요구 속에 방치함으로써 평생동안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들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그들은 부정하고 싶은 세상의 어두운 면을 책으로 배웠기 때문에 그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부모에 대한 애착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병들게 하는 집착이다. 이 집착은 감사와 연민, 부정, 환상, 복종, 불안,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나머지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진실을 거부하지 않고, 억압했던 고통을 자기 안에서 느끼고, 몸이 감정적으로 알고 있는 과거를 정신적으로도 받아들여 더 이상 억압하지 말고 통합해야 한다. 부모와의 관계는 유지될 수도, 단절될 수도 있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프레데릭 와츠, 희망, 1886

 

용서할 필요는 없다.

 

파괴적인 애착에서 벗어나려면 분노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용서를 독촉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용서해야 실제로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면화된 부모가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간섭하고 파괴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예속상태는 결국 증오를 조장한다. 그리고 이 증오는 억압당한 상태에서도 활동하면서 공격성을 충동질한다. 자신이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한 증오밖에 할 것이 없다.

 

진실을 마주하다.

 

진실 앞에 마주 설 용기와 의지를 가지면 헛된 기대는 소멸될 수 있다. 부모로부터 받지 못했던 사랑을 그들이 언젠가 베풀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고통이 수반되는 과정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 인정해야 자유로워진다.

 

“고통은 어찌할 수 없는 거지만 힘들어하는 것은 선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어린아이, 아이어른 등은 부모의 자식을 의미한다.

 

ⓒ로뮤토피아 (romutopia@naver.com)

 

<참고>

앨리스 밀러,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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