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8. 15:38ㆍ심리
악마의 물을 마시다.
우리나라는 술에 대해 관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집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월간 음주율은 남성의 경우 70.5%, 여성의 경우 51.2%이다. 남성은 소폭 하락하고 있고, 여성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대부분은 알콜중독자인 셈이다. 우리나라보다 음주에 더 관대한 나라는 러시아뿐이다.
음주문화가 관대한 또 다른 집단은 예술가들이다. 예술작품 속에는 술이 자주 등장한다. 국적을 막론하고 실제로 술에 절어 살았던 예술가들이 많았다. 19세기 화가들은 압생트라는 독한 술을 즐겨 마셨다. 압생트는 저렴하고 도수가 높아 빨리 취할 수 있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최적화된 술이었다. 압생트의 도수는 무려 70도에 달했다.
환각의 세상에서 창조를 꿈꾸다.
예술가들은 주점에서 모여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살았다. 고흐와 고갱 등 유명한 예술가들이 즐겨가던 주점은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한다. 드가, 마네, 피카소 등도 압생트를 즐겨 마셨다. 압생트를 마시면 환각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정신착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들은 그 악마와 같은 느낌을 예술작품으로 옮겨놓았다. 고흐는 압생트를 마신 후 자신의 귀를 잘랐다.
압생트는 중독성이 강한 술이다. 그래서 ‘악마의 술’이라고 불렸다. 압생트 외에도 모든 술에는 중독성이 있다. 처음에는 내가 마시던 술이 어느 순간에는 나를 마셔버린다.
잊고싶은 시간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는 끊임없이 술을 마시는 어른이 나온다. 왜 술을 마시느냐는 어린 왕자의 물음에 술을 마시는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마신다고 답한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잊고 싶어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조금만 마시면 조금 잊어버리고, 많이 마시면 많이 잊어버린다. 그리고 점점 자기 자신도 잃어버린다. 그들이 그렇게 잊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술에 취한 사람은 현실을 떠나 자신이 만든 미지의 세상으로 떠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가고자 하는 길이 있지만 술에 취한 사람이 제대로 된 길을 찾기는 힘들다. 아마도 그들도 알고 있기에, 가고자 하는 길을 찾을 수 없기에 애초에 길을 찾을 수 없는 방법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갇혀버린 사람들
미셸 푸코는 현실과 다른 이질적 공간을 ‘헤테로토피아’라고 했다. 그곳은 의무, 억압, 경쟁, 반복에 지친 사람들이 위안을 받는 낙원이다. 헤테로토피아는 자기배려의 공간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알콜중독자란 자신만의 헤테로토피아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그곳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곳으로도 갈 수 없어 그곳에 갇혀버린 사람들이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남자 주인공은 말한다.
“술을 마셔서 아내가 떠났는지, 아내가 떠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탈출한 그들은 행복했을까. 술을 마시며 망각의 숲으로 들어가고 정신이 들 때쯤 자기혐오에 빠져 비틀거리고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그 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숲속에 갇혀버린다.
감금의 끝
우리는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많은 중독을 경험한다. 쇼핑중독, 알콜중독, 도박중독, 사이버 중독 등등...모든 중독에는 공통점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탈출하고자 시작했으나 결국은 자신을 감금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 감금의 끝은 때로는 죽음이기도 하다.
한을 마시는 삶
그들은 한 잔의 술을 통해 한을 마신다. 그리고 잊는다. 망각의 달콤함에 취해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달콤함은 고통이 되어가고 점점 악몽 속에서 헤맨다. 버리고 싶은 건 현실이었지만 결국 잃어버린 것은 자기 자신이다. 지나온 시간을 되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새롭게 시작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로뮤토피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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