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없는 나라

2020. 12. 21. 18:201분책

팔레시 왕국에는 이제 크리스마스가 없다.

 

예전에는 팔레시 왕국에도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아름다운 광경은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들이 다섯 명 이상 모이면 어둠의 탑에 갇히기 때문이다.

 

 

출처 : pixabay

 

대대로 스파트닐리데 가문은 팔레시 왕국의 법과 전통을 관장하고 관리했다. 팔레시 왕국의 법과 전통은 오로지 하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파트닐리데 가문의 구성원 중 가장 부족한 사람으로 뽑힌 사람이 가문의 전통을 이어갔다. 가문의 계승자로 부족한 사람을 뽑는 이유는 부족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행복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계승자는 블라젠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결핍을 느끼고 외로워했다. 그의 고독과 절망감은 너무 깊어서 지하세계에서도 그의 한숨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세계에 살고 있는 악귀 다벨은 그의 한숨을 모아 상자에 모아두었다. 다벨은 인간의 불행을 먹고사는 악귀였다. 고통과 절망의 한숨은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에 다벨은 블라젠의 한숨을 열심히 모았다.

 

어느 날 다벨은 블라젠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너의 한숨을 내가 갖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네가 느끼는 고통과 절망을 느끼게 해줄까?”

 

블라젠은 가문의 계승자가 된 이후 더욱 절망스러운 상태였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이 팔레시 왕국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게 어처구니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면 차라리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이 애초에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출처 : pixaby

 

그는 모두가 불행한 나라에서 함께 불행하게 살기로 결심한다.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너의 한숨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줄게. 대신 너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될 거야. 그리고 고통과 절망의 에너지는 함께 할수록 더욱 강해져. 그러니까 그 강력한 에너지를 얻고 싶으면 사람들을 모아. 다섯 명 이상 모이면 그 힘은 열 배 이상 강해져. 명심해.”

 

블라젠은 다벨의 제안을 수락한다. 행복이 무언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나라를 이어가는 계승자로서의 의무를 벗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개운했다. 그리고 자신도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잠에서 깬 블라젠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 다벨의 목소리를 들었다. 꿈이겠거니 싶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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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상쾌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달라 보였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바람도 훈훈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당당한 계승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마을에 들어선 블라젠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의 왕국은 싱그러운 초록 잎사귀와 함박웃음이 넘쳐나던 곳이었다. 나무 잎사귀는 모두 말라비틀어졌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동감이 없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깊은 고통과 절망 끝에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송장처럼 보였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그는 마을 사람들을 붙잡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행복한 나라를 계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러자 발밑의 땅이 썩어가고 나뭇가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얼굴은 늙은 호박처럼 비틀어졌다. 그러자 고통과 절망의 에너지는 모일수록 강해진다는 다벨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다급히 사람들에게 서로에게서 떨어지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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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이다. 다섯 명 이상 함께 서 있지 마라. 모이지 마라.”

 

사람들이 흩어지자 썩어가던 땅도, 갈라지던 나뭇가지도 멈추었다. 사람들이 멀어질수록 예전 상태로 복원되었다. 그래서 팔레시 왕국의 법에는 두 번째 조항이 생겼다.

 

"사람들은 모일 수 없다. 다섯 명 이상 모이면 절대로 안 된다. 다섯 명 이상 모이면 어둠의 탑에 갇히리라."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났다.

 

블라젠은 난생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껴봤지만 오롯이 행복이라는 감정을 만끽할 수 없었다.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행복을 느낀 가슴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절망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자기 혼자만 느끼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었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행복과 고통, 절망은 형제라는 것을, 함께 살아야만 조화롭다는 것을 말이다.

 

블라젠은 지하세계로 다벨을 찾아간다.

 

 

출처 : pixabay

 

“내 한숨을 거둬가 줘.”

“그냥은 안 되지.”

“내가 무엇을 하면 행복한 나라를 되돌려줄래?”

“내가 모아놓았던 그 한숨덩어리를 네가 다 마셔.”

“조건이 그것뿐이야? 그러면 돼?”

“너는 전보다 더 많이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울 거야. 그래도 되겠니?”

 

블라젠은 다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둡고 축축한 기운이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지하세계를 빠져나왔다. 그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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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빛이 느껴지며 싱그러운 풀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초록색 잎사귀가 가득한 마을에는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팔레시 왕국의 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저마다 함박웃음을 짓고 행복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는 벅찬 감정이 솟구쳤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어떤 의지인지도 모른다.’

 

팔레시 왕국은 크리스마스를 되돌려받았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사랑을 나누며 더 많은 사랑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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