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4. 20:21ㆍ심리
로뮤토피아는 아름답고 특별한 영화 'Her'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가장 커다란 기쁨이자 슬픔이고, 고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은 다양한 사랑을 작품에 투사한다. 우리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사랑을 대리체험하고,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에 빠져들면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호르몬의 작용으로 허공에 뜬 듯한 황홀한 감정을 느끼고, 상대방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생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호르몬은 약 18개월 정도 분비된다. 대개의 경우 18개월이 지나면 신격화되었던 연인은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영화 'Her'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보면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이 떠오른다. 피그말리온은 사람을 믿지 못했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자신이 조각한 상아조각과 사랑에 빠진다. 신화와 예술작품에는 피그말리온의 사랑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심각한 성격장애이다. 불신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는 망상성 성격장애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의 삶은 무미건조함으로 가득 차 있다. 소중했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전부인과는 이혼과정 중이다. 그들의 사랑은 왜 끝나게 되었을까.
테오도르는 스스로를 외로움이라는 구덩이에 가두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피그말리온처럼 그의 인간관계에는 진정한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생각이 없고, 인간과의 교류는 아픔을 주거나 받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함께 살아가고, 함께 나누고, 의지하는 존재가 아닌 아픔이다. 모순적인 건 그의 직업이 사람의 마음을 전달하는 편지를 대신 작성해 주는 대필작가라는 것이다. 그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삶을 상상하고, 감정을 끌어올려 아름다운 글을 쓴다. 그러나 현실 속의 그는 그런 감정을 알지 못한다.
"사랑은 멋있는 꽃이지만,
무시무시한 절벽의 가장자리이고,
가서 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스텐드할
어느 날 그는 퇴근하다가 우연히 'OS1'이라는 인공지능 광고를 보게 된다. 광고는 OS1이 당신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이해해주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OS1은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서 당신을 안아주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즉흥적으로 OS1을 구매한다.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사만다'라고 정한 OS1은 사람처럼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테오도르도 사만다와의 일상이 자연스러워진다. 인간과의 소통이 어려웠던 그에게 사만다는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의 소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배운다.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져든다.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은, 아니 본 사람조차도 어떻게 그러한 사랑이 가능하며, 그러한 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인간은 물리적 존재이기도 하고, 인간의 사랑 속에는 에로스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면서 안정감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AI인 사만다와의 사랑은 너무 건조하게 보이기도 한다.
사만다는 말한다.
"내 속에는 네가 한 조각 있고,
난 그게 정말 고마워."
영화 'Her' 중에서
그들은 단지 목소리로 교류할 뿐이다. 게다가 사만다는 기계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관계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사만다는 진짜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그를 이해해주고, 그의 말에 귀기울여주며, 그의 상처를 치유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통해 웃음을 되찾고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에게는 사만다가 더이상 인공지능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이다. 그는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부인은 컴퓨터와 사랑에 빠졌다는 그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며 당신은 늘 순종적인 아내를 원했다고 빈정거리지만 절친인 에이미는 어차피 사랑에 빠지는 건 미친 짓이라며 그들의 사랑을 공감하고 이해한다.
"사랑에 관해서는 미친 사랑이
더 많은 경험을 갖게 된다."
베너벤테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사랑은 미친 짓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진정한 사랑을 나눈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이상의 사랑다움이 또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홀로인 외로운 존재이면서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다.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그 일을 인간보다 더 잘 해낸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늘 해피엔딩을 꿈꾼다. 아마도 현실에서는 해피엔딩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해피엔딩이고, 또다른 의미에서는 새드엔딩이다. 사만다는 인공지능의 목표는 끝없는 성장이라고 말하며 테오도르를 떠나버린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은 유한하다. 그 유한한 삶을 통해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죽음 이후의 삶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확언할 수 없지만, 그러하기에 잠시 머무르는 이 삶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행복하고자 노력한다. 그것이 유한성이 지닌 무한성이다. 인간의 감정은 정량화될 수 없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은 수량화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우리의 사랑과 행복은 무한하다.
"마음은 상자처럼
무언가로 꽉 차는 게 아니다."
영화 'Her' 중에서
'Her'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통찰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던 사만다의 목소리는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했다.
로뮤토피아의 AI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로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보기>
영화 'Her' OST - The Moon Song
www.youtube.com/watch?v=CxahbnUCZ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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