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2. 17:58ㆍ심리
로뮤토피아는 '심리와 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현대인들이 요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쟁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생존하느라 우리의 마음과 몸이 분리되어 평안함을 잃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요가에 관심을 갖는다.
'요가(yoga)'는 산스크리트어의 '이어매다, 결합하다'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결합시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요가는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작업이다. 우리에게 흔히 요가라 알려진 것은 ‘하타요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하타요가가 주로 행해진다. '하'는 '해'를 의미하고, '타'는 '달'을 의미한다. 하타요가는 마음의 평안함을 위해 몸을 움직이려 한다. 몸이 잘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일 때 마음도 활성화된다. 호흡, 신체적 운동, 마음의 합일을 추구한다. 하타요가는 라자요가의 일부라고 보면 된다. ‘라자요가’의 '라자'는 산스크리트어로 '왕'을 의미한다. 라자요가는 보다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 라자요가는 명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타요가와 라자요가는 반대말이 아니다. 라자요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타요가를 거쳐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타요가는 라자요가에 이르는 사다리이고, 라자요가는 요가의 왕이다.
"그 자아가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누구나 그와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진실을 알지 못한다."
'브리하다란야까 우파니샤드' 중에서
요가와 심리학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개인의 운명은 심리적 성향의 작용이다.
둘째, 신화와 종교의 형상들은 하늘로부터의 계시가 아니라 정신생활의 발현이고, 환상의 투영이다.
셋째, 한 개인의 심리적 성향은 자신의 꿈과 그의 운명적 사건들에 대한 통제를 통해서 변형될 수 있다.
요가를 통해 의식은 근원과 결합되며, 인간은 자신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요가수행을 통해 형태, 이름, 관계 등 모든 것들을 벗어던질 수 있다. 그리고 의식만이 우리의 명상 속에 남는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아무 물건이나 집어보자. 핸드폰이라도 좋다. 마음 속으로 핸드폰 주변에 원을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다고 생각하자. 핸드폰으로 무엇을 하는지, 그것이 핸드폰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다 잊자. 그 존재만을 인정하고 단순하게 바라만 보자.
그것은 무엇인가?
개념에서 분리된 물건은 특정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경이이며, 그 자체로 처음이자 끝이다. 이름 없는 그 무엇을 바라보고 명상하는 동안 우리는 순수한 상태로 돌아간다. 이러한 방법은 티베트 불교의 명상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우리는 원안의 그 무엇으로 빨려들어가며 속세의 끈을 놓고 신비를 체험한다.
"강렬하게 바라보면 어떤 사물이나 신들의 영겁으로 다가가는 문이 되리라."
제임스 조이스
'만다라(maṇḍala)'는 ‘원’을 의미한다. 완전하게 둥근 원이다. 만다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도구로 종종 사용되었다. 중앙으로부터 상하좌우가 대칭을 이루어 어떤 각도로 보더라도 똑같다. 그래서 융학파의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상태를 알기 위해 매일 동그라미를 그린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하다. 잘 그린 날은 괜찮은 날이고, 조금 어긋나는 날은 평온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만다라의 시작은 원이었지만 사각형, 마름모꼴, 타원형 등도 만다라의 한 유형으로 활용된다. 심리학자 융이 만다라를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주변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책상, 형광등, 창문, 꽃...무엇이든 만다라가 될 수 있고, 여러분은 지금 바로 피안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운명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은 달라진다.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괜찮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성격이나 성향이 유전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유전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이나 성향은 나 자신의 적극적 개입과 통제를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 나의 삶은 나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마음이 평온하지 않다면 동그라미를 하나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며 멍때리기를 하자. 가장 쉽게 명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로뮤토피아의 운명 그리고 요가와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로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조지프 캠벨, 신화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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