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9. 18:42ㆍ심리
로뮤토피아는 사랑의 쓸쓸함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그의 오랜 연인이자 부인이었던 엘리자베스 시달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낭만주의 화가, 시인이자 라파엘 전파 중 한 명이다. 라파엘 전파에는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 등이 속해있다. 그들에게는 라파엘 이전의 미술로 돌아가자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그들은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미술이 타락했다고 생각하고 중세의 신비와 낭만을 모티브로 삼았다. 라파엘 전파는 자연에 최대한 충실하여 사물을 그대로 그리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보티첼리의 미술을 역할모델로 삼았다.
로세티는 엘리자베스 시달과의 사랑이야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 시달은 햄릿의 연인이었던 오필리아의 죽음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밀레이의 ‘오필리아’의 실제 모델이었다.
1850년은 로세티의 삶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로세티는 ‘수태고지’를 그렸고, 엘리자베스 시달을 만났다. 리지로 불리던 그녀는 로세티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로세티는 그녀를 뮤즈로 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엘리자베스 시달은 모자공장에서 일하던 평범한 노동자였지만 시와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키가 크고, 섬세하고, 가냘픈 외모는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관능적인 입술과 화려한 붉은 머리카락은 화가들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로세티와 그의 친구들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바라보았다. 밀레이는 리지를 모델로 하여 필생의 역작인 ‘오필리아’를 그리기도 했다. 밀레이는 최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하기 위해 리지를 물로 가득 찬 욕조 안에서 몇 시간씩 누워있도록 했고, 이 때문에 리지의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오필리아를 표현한 작품 중에서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랑이란 한 사람과 모든 사람들 사이에 있는 차이를 심각하게 과장한 것이다.”
셰익스피어
로세티는 리지를 독점하고 싶어 했고, 끈질긴 구애 끝에 1852년 그녀와 동거를 시작한다. 그녀는 로세티의 뮤즈로서 그의 창작력이 화려하게 피어나도록 돕는다. 리지는 로세티의 작품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지만 영감을 주는 뮤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그녀의 도움으로 로세티는 화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간다.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실제 삶은 빈민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웠던 로세티는 화가로서 입지를 공고하게 다져갔지만 그럴수록 리지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로세티는 다른 모델들을 구할 만큼의 여유를 갖게 되었고, 그녀들과 바람을 핀다.
로세티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동료 화가인 윌리엄 홀먼 헌트의 약혼녀와 밀회를 나누기도 했고, 시인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와도 바람을 피웠고, 매춘부들과도 깊은 관계를 가졌다.
“미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해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사랑하니까 당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처칠
엘리자베스 시달은 스스로도 재능이 많은 화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로세티를 통해서가 아니면 그녀의 작품을 그 자체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로세티와 리지는 10년 동안 약혼과 파혼, 결별과 재회를 반복했고, 그녀의 건강이 악화된 1860년에 이르러서야 결혼을 하게 된다. 주변의 비난에 떠밀려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로세티는 리지가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사랑은 눈 먼 것이 아니다. 더 적게 보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본다. 다만 더 많이 보이기 때문에 더 적게 보려고 하는 것이다.”
랍비 줄리어스 고든
로세티에게 상처받은 리지는 정서불안으로 아편에 중독되었다. 그녀는 로세티의 바람기에 지쳐있었고, 사산의 고통을 겪은 후에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리지에게는 아이가 마지막 희망이었다. 아이를 낳으면 로세티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유산은 심한 충격을 주었고, 정신이상 증세로까지 이어졌다.
1862년 그녀는 로세티가 집을 비운 사이에 아편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사인은 아편과다복용이었지만 사실상의 자살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관행상 사고사로 처리된다. 그녀의 나이 32세였다.
엘리자베스 시달에 대한 로세티의 사랑이 진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준 남자임에는 틀림없다. 로세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로세티는 주변의 비난과 자책감 때문에 자신의 자필시집을 리지의 관에 함께 넣어 묻어주었다. 그러나 7년 후 그 시집을 발행하기 위해 그녀의 관을 파헤쳐 시집을 되찾아오는 만행을 저지른다. 로세티는 끝까지 나쁜 남자였다.
그는 그녀의 죽음 후 그녀를 모델로 한 '축복받은 베아트리체'를 그렸다. 베아트리체 옆에 있는 해시계에 그림자가 졌고, 9시를 가리키고 있다. 흰 양귀비꽃은 아편과 죽음을 상징하고, 꽃을 물고 있는 새는 죽음의 사자이다. 이 작품은 1850년에 그린 드로잉에 기초한 작품으로 로세티는 그녀의 죽음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의해 행해지는 것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
니체
로뮤토피아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엘리자베스 시달을 통해 뒤돌아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로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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